94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엑시트를 처음엔 단순한 재난 코미디로 봤습니다. 그런데 중반을 넘어가는 순간부터 소름이 돋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대학 시절 직접 겪은 일과 너무 닮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사람이 위기 속에서 어떻게 달라지는가, 그 질문이 영화 밖에서도 실제로 일어난다는 걸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재난 속 평범한 영웅, 그 가능성
영화 엑시트에서 주인공 용남은 취업에 실패하고 가족에게 얹혀사는, 사회적으로는 실패한 청년으로 그려집니다. 그러나 어머니 칠순 잔치가 열리던 연회장에 유독가스가 퍼지면서 상황이 바뀝니다. 이 유독가스는 공기보다 무거운 고밀도 기체로, 쉽게 말해 낮은 곳부터 채워지며 위층으로 점점 올라오는 특성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오히려 더 위험해지는 역설적인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재난 상황에서 용남의 클라이밍 실력이 빛을 발합니다. 클라이밍이란 암벽이나 건물 외벽을 손발만으로 오르는 기술로, 영화에서는 이 능력이 탈출 루트를 개척하고 사람들을 구조하는 핵심 수단으로 활용됩니다. 영화를 보면서 "저게 가능한가?"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실제로 고층 건물 외벽 이동은 숙련된 클라이머에게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다만 제가 이 장면에서 집중한 건 기술 자체보다, 용남이 자신의 능력을 타인을 위해 쓰는 선택을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재난 대응과 관련하여 국내외 전문기관은 공통적으로 초기 대응자의 역할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초기 대응자란 전문 구조대원이 도착하기 전, 현장에 있던 일반인이 먼저 응급조치를 취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재난 현장에서 골든타임 내에 이루어지는 초기 대응이 생존율을 크게 좌우한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연구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골든타임이란 심정지나 중증 외상 발생 후 적절한 처치가 이루어져야 하는 제한된 시간, 보통 4~8분 이내를 뜻합니다.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뛰어난 스펙이나 지위가 아닌, 위기에서의 선택이 영웅을 만든다
- 협력과 희생이 개인의 생존 확률보다 더 큰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 평소에 쌓아온 사소한 능력이 결정적인 순간에 작동한다
저는 단순한 재난 코미디라고 봤던 이 영화에서 세 번째 메시지가 가장 크게 와닿았습니다.
응급처치 지식이 실제로 작동하던 순간
제가 대학교 수업을 듣던 중 옆에 앉은 친구가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입에서 거품이 나고 몸이 경직되면서 발작이 시작되었습니다. 발작이란 뇌의 비정상적인 전기 신호로 인해 근육이 통제 불가능하게 수축하고 의식이 흐려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주변 친구들은 순간적으로 공황 상태에 빠졌고, 누군가는 "CPR 해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소리쳤습니다.
CPR(심폐소생술)이란 심장이 멈췄을 때 가슴을 압박하여 혈액 순환을 인위적으로 유지시키는 처치입니다. 그런데 발작 증상에서 CPR을 시행하는 것은 오히려 위험합니다. 심장이 뛰고 있는 상태에서 강한 흉부 압박을 가하면 갈비뼈 골절이나 내부 장기 손상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응급구조자격증을 취득해 두었던 터라 이 차이를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한 것은 회복 자세 유지였습니다. 회복 자세란 기도 확보를 위해 환자를 옆으로 눕히고 기도가 막히지 않도록 고개를 뒤로 젖히는 자세로, 발작 환자의 질식을 막는 가장 중요한 기초 처치입니다. 저는 친구를 옆으로 눕히고, 5분 정도 몸 상태를 확인하며 주변 친구들에게는 119 신고와 주변 정리를 부탁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자격증 공부를 할 때만 해도 "실제로 쓸 일이 있겠어?"라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다행히 5분 후 친구는 의식을 회복했고,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저는 그 순간 영웅이 된 기분보다는, 그 자리에 지식이 있는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더 강했습니다.
일반인 응급처치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대한심폐소생협회에 따르면 심정지 환자의 생존율은 목격자가 즉시 심폐소생술을 시행할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2~3배 높아지며, 올바른 응급처치 지식의 보급이 핵심 과제로 꼽힙니다.
영화 속 용남과 제 경험이 겹쳐 보였던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화려한 배경이나 대단한 직책이 아니라, 그 상황에 맞는 지식과 선택이 있었다는 것. 자연 재해든 응급 상황이든, 피해를 입는 것 자체는 너무나 억울하고 호소할 곳이 없는 고통입니다. 그 고통 앞에서 누군가가 제대로 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 그게 영화 엑시트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영화 엑시트를 단순한 여름 흥행작으로만 보기엔 아까운 작품입니다. 재난 상황에서 개인의 능력이 어떻게 공동체의 생존으로 이어지는지, 그리고 그 능력이 반드시 대단한 것일 필요는 없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응급처치 교육 한 번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신다면, 그게 가장 현실적인 다음 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한적십자사나 지역 소방서에서 무료로 진행하는 심폐소생술 교육에 참여해 보시길 권해 드립니다.